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/결선 리그 1경기 (문단 편집) === 대만의 경기 준비 === 이번 대회 출전 과정에서, 대만은 상당한 전력을 구축해 등장했다. 12년 만의 올림픽 본선을 위해 [[왕젠민]][* [[왕젠민]]은 이 삿포로 대회와 이듬해 아테네 올림픽 본선까지는 참가했으나, [[뉴욕 양키스]]의 40인 로스터에 합류한 후로는 빅 리그에서 활약하면서 구단의 반대로 국제대회에서 뛰지 못했다. 이후 미국 생활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온 [[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]]에나 참가할 수 있었지만, 이미 대만 대표팀은 황금기를 지나 호구가 된 뒤였고 왕젠민 자신도 전성기를 지난 뒤에 국대팀에 선발된 것이라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.], 일본 [[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|세이부 라이온즈]]의 선발 장즈지아[* 한국 한자 독음으로는 장지가(張誌家). 우완 투수이며 2001년 [[야구 월드컵]] 3위 결정전에서 일본 대표팀에 완투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2002~2004년 3시즌간 세이부에서 뛰었다. 대만프로야구로 복귀했으나 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. 밑의 항목에서도 장즈지아에 대한 추가설명이 나오니 참조 바람.], 쉬밍지에[* 한국 한자 독음 허명걸(許銘傑). 우완투수이며 2000~2011년 12시즌은 세이부에서, 2012~2013년은 오릭스에서 뛰고 2014년부터 대만프로야구에서 뛰고있다. 여담으로 [[2000 시드니 올림픽/야구]] 출전권을 걸고 [[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]]에서 열렸던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[[박재홍(야구)|박재홍]]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된 적도 있다.] 등등 메이저리거 [[차오진후이]]를 제외한 해외파들을 전부 소집해 준비했기 때문이다.[* 당시 [[차오진후이]]는 [[콜로라도 로키스]] 소속으로 2003년 7월 이제 막 빅리그에 입성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였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